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리랑카 내전 (문단 편집) == 내전 종식 후 == [[파일:attachment/스리랑카 내전/Example.jpg]] ▲ 2009년 내전 과정에서 사망한 타밀족 민간인 시체들을 지나가는 스리랑카 정부군. 파트마나탄은 간신히 해외로 달아났지만 결국 2009년 8월 7일 [[말레이시아]]에서 체포되어 말레이시아 정부에 의해 스리랑카로 인도됐다. 이리하여 1983년 싱할라족들의 타밀족 학살로 시작되어 26년 가까이 이어진 스리랑카 내전은 10만여 명의 전사자와 부상자들을 낸 채 스리랑카 정부군의 승리로 종료되었다. 내전은 LTTE의 패배로 종료되었으나 스리랑카 정부는 내전 종결 이후 LTTE 인사들에 유화적이었다. 예를 들면 LTTE의 수장인 파트마나탄은 수감되었다가 2012년 혹은 그 이전 시점에 풀려난 것으로 추정된다. [[https://www.bbc.com/news/world-asia-19979165|기사]] 그는 무력 저항 활동을 완전히 포기하고, 타밀족 주요 거주지인 북동부에서 NERDO(North-East Rehabilitation and Development Organization)를 설립해 타밀족 교육과 지역 재건에 힘쓰고 있다. [[https://lankacourier.org/bliss-of-togetherness/|관련 인터뷰]] 비나야카무르티 무랄리타란도 2004년 당시 투항한 그는 영국으로 압송되어 거기서 재판받고 복역했으나 꼴랑 9달 복역하고 풀려나 스리랑카 정치인이 되었다. 그가 재판받은 이유는 타밀 반군 대령이라서가 아니라 1993년 스리랑카 경찰관 포로 113명 학살이라든지 여러 학살 논란이 있기 때문인데, 본인은 아니라고 부정한다. 그는 민족화해부 장관을 역임했고 2020년 6월 19일 국회의원 선거에 나와 연설을 하다가 >코로나로 스리랑카에서 100여명 죽었지만 저는 화끈합니다. 전쟁 와중에 2천명이 넘게 죽였죠! 라는 헛소리를 하는 통에 스리랑카 내에서 비난을 받자 결국 함부로 말을 막했다고 꼬리내리며 사과 성명을 해야했다. 이 여파인지 결국 낙선했다. 그 외에도 더글러스 데바난다는 2019년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내전의 종결이 싱할라족의 타밀족에 대한 강제적인 억압을 통해 이뤄진 것인데다 본질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스리랑카의 현 정부가 이를 개선할 생각도 전혀 없다. 물론 스리랑카 정부도 오랜 내전으로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은 만큼, 타밀족에 대한 회유책도 늘리고 이들 지역에 생활기반 시설도 조금씩 투자하면서 거주 지역에 학교를 세우고 정부 방침에 따르는 교육을 시키기 시작했다. 더불어 타밀족도 여러 세력으로 분열되어 친 스리랑카파도 세력이 늘었고 이들은 스리랑카 정부 요직에 등용되며 이들이 타밀 거주 지역을 맡는 게 늘어나고 있다. 내전으로 인하여 스리랑카에는 관광객도 줄어들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2000년 초반 [[KBS]]에서 스리랑카 바닷가를 취재했는데 [[벨기에]]에서 온 [[백인]] 관광객이나 겨우 몇몇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그 벨기에 중년 남성은 인터뷰에서 '자신은 피서 때마다 여길 10년 넘게 왔음에도 총소리 한번 듣지 못한 평화로운 곳이라고 했는데 정작 벨기에에서도 내가 여기로 피서 온다면 사람들은 스리랑카는 전쟁이 한창이라 위험하지 않냐 하는 소리가 먼저 나온다.'고 안타까워했다. 그 지역은 타밀족이 거의 없어서 평화로운 곳임에도 외국에서 관광객이 거의 오지 않았기에 현지 싱할리인들은 인터뷰에서 타밀족을 욕하면서 분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전으로 인한 경제적인 타격을 받았으며 당연히 스리랑카 다수 서민들 삶은 어려워졌다. 게다가 스리랑카 정부가 오랜 전쟁으로 전쟁세를 특별히 받으면서 스리랑카 다수 여론이 갈등을 빚으면서 정치적 갈등도 빚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타밀족에 대한 차별이 내전의 원인이었음에도 오히려 내전으로 인해 타밀족에 대한 증오 여론은 더 커지고 차별도 더 심해졌는데, 전쟁이 한창일 때 스리랑카 전역에서 타밀족에 대한 차별과 구타가 만연했고 일부에서 학살도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스리랑카 군인들이 내전이 끝나기 직전 타밀족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주장이 영국 채널4의 리포트에서 제기됐다. [[http://www.youtube.com/watch?v=Rz_eCLcp1Mc|#]] 그러나 지금은 강대국들에 의하여 이들이 테러 분자로 낙인찍히면서 그런 학살도 죄다 잊히고 있다. 스리랑카를 찾아가서 취재한 정문태 [[한겨레]] 기자에게 타밀족들은 우리만 모든 비난을 다 받고, 정작 스리랑카 정부가 우리에게 해 온 일은 누구도 알아 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던 바 있다. 이때 정문태 기자가 취재를 위하여 타밀족 구역으로 가려고 할 때 검문소를 지키던 스리랑카군이 가서 지겹게 들을 타밀족의 정당화 헛소리는 무시하라면서 더불어 그런 짓을 옹호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사를 게재했을 때 정작 국내의 반응은 냉담했다. 타밀족은 역시 테러리스트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만연했던 것. 90년대 후반에 [[중앙일보]]도 비운의 민족이라고 몇 번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타밀족 반군도 아군 아니면 적으로 여겨 중립을 지키던 이슬람이나 기독교인까지 공격해 학살하는 일을 저지르고 은행 폭발 같은 테러까지 가해 스스로 무너진 자업자득도 있었다. 타밀족 학살만 많이 언급되어서 그렇지 반대로 타밀족에게 학살당한 싱할리인들이나 다른 민족이나 종교인들도 있었다. 2016년에도 여전히 스리랑카는 내전 지역으로 분류되어 여행자 보험이 가입되지 않는 지역이고, 스리랑카 정부는 타밀족 [[난민]]의 국외 탈출을 묵인, 사실상 조장하고 있다. 과거 LTTE 점령지에는 군사 시설이 쫙 깔려 있고 타밀족 거주지까지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3개의 검문소를 지나야 한다고 한다. [[UN]]은 독자적인 전쟁 범죄 조사팀을 편성해서 2014년 8월 현재 조사 중에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증거 부족 및 여러 사정으로 조사는 난항을 겪고 있는 중이다. 한편 내전을 해결한 점을 어필하며 2선 재선에 성공한 라자팍사는 2010년 3선 연임 법률을 바꾸며 미국과 서구권에서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고 낙하산 인사 및 비리에 휘말려 여론의 반발을 일으킨다. 결국 같은 정당이던 전 대통령 쿠마라룽가가 반대하여 다른 정당을 세웠으며 사무총장이자 동료이던 마히드라팔라 사리세나가 이 새로운 정당으로 옮겨가서 2015년 1월 선거에서 라자팍사의 3선을 막아내며 새로운 대통령이 된다. 사리세나 대통령은 2017년에 [[대한민국]]을 [[https://www.youtube.com/watch?v=ifZIJz6kf_Y|국빈방문]] 하였다. 2019년 대선에서 마힌다 라자팍사의 동생인 [[고타바야 라자팍사]]가 출마하여 논란이 발생했다.[[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10180446063001?did=NA&dtype=&dtypecode=&prnewsid=|#]] 그리고 대선에서 당선 이후 라자팍사 가문이 장악하면서 대통령 권한 강화가 심화되고 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965520?sid=104|#]] 그리고 라자파사 가문의 통치로 인해 누적되던 병폐는 내전의 상흔을 완전히 치유하기는커녕 [[2022년 스리랑카 경제위기]]로 이어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